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문의 변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[[고메이 덴노]]가 양이 토벌의 명령을 내리면서, [[존황양이]] 사상이 일본 내에 퍼지게 된다. 그러면서 존왕파와 양이파의 세력도 불어나는데, 그 중에는 사츠마와 조슈가 대표적이었다. 그러나 조슈는 [[시모노세키 전쟁]]과 8.18 정변, 그리고 뒤따른 [[이케다야 사건]]까지 겹치면서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난 상태였고,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정변을 일으켜 [[쇼군]]의 권력을 [[천황]]에게 되돌리려는 계획을 세운다.[* 그러나 천황에게 권력을 되돌리는 것보다도, 천황을 이용하여 다른 파벌에 대하여 정치적인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볼 수 있다.] 조슈번은 1864년 8월 20일 교토의 하마구리 문을 공격하며 반란을 일으켰다. 처음에는 막부군을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내 사츠마와 아이즈가 연합하여 교토의 황궁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면서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다. 이 때 조슈가 퇴각하는데 시간을 벌기 위하여 교토에 불을 질렀는데,[* 퇴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,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질렀다는 설도 있다.] 이 불이 번지면서 타카츠카사 가[* [[고셋케]] 중 하나인 공가.]의 저택이 불타기도 한다. 반란은 진압되었고 조슈는 교토에서 완전히 퇴출된다. 그러면서 천황의 국사어용계(国事御用掛)[* 막부 말기에 국사를 논의하기 위하여 설치된 관직]였던 나카야마 타다야스[* 고메이 덴노의 첩이자 메이지 덴노의 어머니 나카야마 요시코의 아버지이기도 하다.]가 책임을 지고 교토에서 쫓겨나게 되기도 한다. 그리고 [[막부]]는 이 일을 계기로 제1차 조슈 정벌을 계획하게 된다. [[분류:1864년 전투]][[분류:에도 시대]][[분류:일본사/전투]][[분류:실패한 쿠데타 및 반란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